아차리포트

[김현식의 시크한 가요] '힙잘알' 쇼미더머니, 그리고 '힙합공룡' CJ ENM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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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777’, 사진제공|CJ E&M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 분명 매드클라운이 맞는 것 같지만, 결코 매드클라운이라고 부를 수 없는 힙합계의 볼드모트 마미손. 그는 '쇼미더머니777'(이하 '쇼미')에서 탈락한 뒤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곡인 '소년점프' 뮤직비디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마미손의 계획은 적중했다. '쇼미' 출연 이후 마미손의 또 다른 영혼인 매드클라운의 주가는 확 뛰었다. 폭염에 복면 쓰고 '불구덩이'에 쳐박히는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방송 출연 덕을 제대로 본 셈이다. '발라드랩' 전문 래퍼 이미지에 갇혀 한동안 저평가되었던 매드클라운은 많은 힙합 리스너들에게 재평가 받고 있는 중이다. '소년점프' 조회수는 벌써 1500만뷰(10월 4일 기준)가 넘어 2000만뷰를 향해 달리고 있다.

매드클라운, 아니 마미손의 사례는 래퍼들이 '쇼미'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제 래퍼들에게 '쇼미' 참가, 그리고 중도 탈락은 더 이상 창피한 일이 아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을 정도로 연차가 꽤 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이 그만큼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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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777’ 방송화면 중

'쇼미'는 이제 '랩 오디션'이 아닌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힙합 축제'로 거듭났다. 2012년 방송된 시즌1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썽꾸러기 소년 같았다면, '트리플세븐'(777)이라는 부제를 단 시즌7는 철이 든 건실한 청년을 보는 듯하다.

물론,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다. '쇼미'는 언제나 뜨겁지만 불안한 프로그램이었다. 억지스러운 '디스 배틀'과 일부 참가자의 상식 밖 가사, '악마의 편집'으로 불리는 자극적인 편집 등으로 인한 논란이 수도 없이 많았다. 시즌4 당시 스눕독을 특별 심사위원으로 앉혀놓고 참가자들에게 마이크를 뺏고 뺏는 '싸이퍼' 미션을 시켜 난장판이 벌어졌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최악의 장면이다.

다행스럽게도 '쇼미'는 갱생에 성공했다. 시즌6부터 갱생의 기미가 보였고, 올해 시즌7에 와서 제대로 철이 든 모습이다. 

정신을 차린 '쇼미'는 참가자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에서 참가자들이 나플라 팀과 수퍼비 팀으로 나뉘어 벌인 팀 대항전은 역대급 명장면이었다. 그야말로 '랩의 향연'이 벌어진 장면이었다. 제작진은 래퍼들이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줬고, 래퍼들은 그 판에서 제대로 뛰어놀았다. 프로듀서들까지 자신해서 무대 아래로 내려와 프리스타일 랩을 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심지어 애초 탈락자가 발생하는 미션이었지만, 프로듀서들은 제작진을 설득해 탈락자가 없도록 조치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논란 제조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프로그램이 어느덧 '평화의 장'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쇼미'가 변했다는 걸 몸으로 직접 체감하고 있는 건 래퍼들이다. 래퍼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달라진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진다. 프로그램 출범 초기만 해도 '쇼미'를 평가 절하하는 이들이 많았다. '쇼미'에 참가한 래퍼들을 '디스'하는 경우도 흔했을 정도. 이번 시즌에서 탄탄한 랩 실력을 뽐내며 인지도를 높인 메킷레인 레코즈의 루피 역시 과거 '쇼미' 출연 래퍼들을 '디스'한 바 있으나, 생각을 바꿔 이번 시즌 참가자로 나섰다. 

루피의 사례처럼 많은 래퍼들은 이제 '쇼미'를 동기부여 장치와 도약의 발판으로 여기는 추세다. '물론 우승을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도중 탈락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인드. 대중에게 그간 갈고닦은 내 실력을 보여주고, 동료 래퍼들과 경쟁하며 음악적 영감을 나누고 또 자극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다는 이들이 인터뷰를 해본 결과 꽤 많았다.

'쇼미'의 진화에는 음악채널 엠넷(Mnet)의 모회사인 CJ ENM이 '힙잘알'(힙합을 잘 아는) 회사로 거듭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CJ ENM은 국내 힙합시장의 파이가 점차 커지자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 박재범이 이끄는 AOMG, 팔로알토가 수장으로 하이라이트레코즈 등 잘 나가는 힙합 레이블들의 지분을 차례로 매입해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최근에는 다이나믹듀오, 프라이머리, 크러쉬 등이 속한 아메바컬쳐 지분까지 매입했다. 

CJ ENM의 투자로 여러 힙합 레이블들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박수를 보낼만 한 일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여전히 힙합을 외면하고 음악 프로그램 라인업을 K팝 아이돌 가수만을 위한 무대로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CJ ENM은 힙합 시장의 양적 향상에 기여했고 최근에는 질적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마미손처럼 CJ ENM이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할 만한 상황.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CJ ENM 측 입장에서는 결코 좋아할리 없는 표현이겠지만, 비판적인 시선에서 보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힙합 공룡'이 점차 몸집을 불리고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힙합계는 CJ ENM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힙합 페스티벌은 물론, 각종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은 '쇼미' 혹은 '고등래퍼' 출신 래퍼들이 채우고 있다. 프로듀서로 출연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쇼미'와 인연을 맺은 적이 없는 래퍼는 손에 꼽을 정도. 즉, '쇼미', 그리고 '힙합공룡' CJ ENM이 잘못된 행보를 택하더라도 이를 신랄하게 비판할 할 수 있는 래퍼들이 갈수록 점점 더 없어지고 있는 셈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쏠림 현상'은 결코 좋은 그림이 아니다. 더콰이엇이 이번 시즌 "처음으로 시청자들이 진짜 높은 수준의 랩을 듣게 된 순간"이라는 언급을 할 정도로 미디어는 여전히 힙합을 외면하고 있다. 어찌 보면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으로 더 많은 미디어가 음악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주길, 래퍼들이 '쇼미'에만 목을 매지 않길, 또 '힙합 공룡' CJ ENM이 부디 지금처럼만 착하게 지내주길 바란다.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쏠리면 결국 균형을 잃고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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